LIFESTYLE 한강이 있어 다행이야

"한강 가자”는 말에 개들이 벌떡 일어나더니 이미 현관 앞에 서 있다. 그렇게 개들을 차에 태우고 10분 정도 달리면 한강 둔치에 도착한다.

2016.0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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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 가자”는 말에 개들이 벌떡 일어나더니 이미 현관 앞에 서 있다. 그렇게 개들을 차에 태우고 10분 정도 달리면 한강 둔치에 도착한다. 평일 낮은 한가하고 조용하다. 한강에 오기 가장 좋은 시간이다. “한강이 있어서 다행이야” 라고 혼잣말을 한다. 한강에 올 때마다 하는 말이다. 일주일에 세 번쯤 가니까 일주일에 세 번쯤 저 말을 하나 보다. 

 

한강을 즐기는 방법이라면 스무 가지쯤 늘어놓을 수 있다. 가장 좋은 건 그냥 불쑥 지나가다가 들러서 풀밭에 20~30분쯤 드러누워보는 것이다. 어느 날 한강 근처를 지나가게 된다면 시도해봐도 좋겠다. 인생의 여유로움이 뭔지 알게 될 테니까. 작정하고 먹을거리와 담요를 챙겨 오후를 고스란히 한강에서 보내는 것도 괜찮다. 요즘이야말로 한강으로 소풍 나가기에 최고의 계절이 아닌가. 푹신한 풀밭에 돗자리를 펴고 개들과 드러누워 몇 시간을 뒹굴거나 차 트렁크에 늘 들어 있는 캠핑 의자를 편다. 이럴 때는 맥주나 샴페인이 한 병 있으면 더할 나위 없다. 아니 이것을 빼놓아선 안 된다. 햇볕을 흠뻑 받으며 마시는 알코올은 보통 때보다 훨씬 강력해서 맥주 반 캔, 샴페인 한 잔이면 온몸이 나른해진다. 이쯤 되면 책도 읽기 싫고, 스마트폰 따위는 쳐다보기도 싫어진다. 잔잔하게 흐르는 강물을 넋 놓고 바라보거나 강 건너 올림픽대로 위를 꼬물꼬물 지나가는 차들을 보는 게 훨씬 재미있다. 다들 바쁜데 나만 이렇게 한강에 누워 맥주 한 캔에 알딸딸해져 있는 기분은 어느 유명 레스토랑에서 호화스러운 코스 요리를 먹는 것보다 더 사치스럽다. 

 

어떤 날은 작정하고 한강을 따라 걷거나 달린다. 맘만 먹으면 끝도 없이 걷거나 뛸 수 있다. 어디에나 오르막투성이인 서울에서 아마도 유일하게 쭉 뻗은 평평한 길일 게다. 게다가 꽤 길게 한강을 걸어본 사람이라면 눈치챘겠지만, 걷다 보면 한강의 모습이 계속 바뀐다. 이 동네의 한강과 저 동네의 한강은 완전히 다르다. 갈대밭 사이로 나 있는 흙길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꽃나무가 잔뜩인 한강이 되고, 또 그곳을 지나면 푸른 잔디밭이 이어지는 식이다. 덕분에 지루하지 않다. 끝없이 이어지는 똑같은 경치를 보며 걷고 뛰는 게 좋다면 강 쪽을 바라보면 된다. 

 

한동안 잠수교 건너는 재미에 빠졌었다. 엄청나게 큰일을 해낸 것 같은 기분이 들기 때문이다. 뛰어간 만큼 돌아와야 한다는 압박감은 주머니에 몰래 챙겨놓은 택시비로 날려버릴 수 있다. 

 

개와 함께 살기 시작하면서 개를 데리고 가기 좋은 곳이 나의 최고 관심사가 된 요즘, 남몰래 내 개들을 데려가는 한강의 숨겨둔 명소 몇 군데가 있다. 사실 그렇게 숨겨진 곳은 아니다. 개를 키우는 사람들은 다 아는 정도. 그래도 이 지면을 통해 공개할 생각은 없다. 알려지고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하면 꼭 눈살을 찌푸리게 만드는 일이 생기니까. 예를 들면 개똥 같은 것이다. 동네 골목에서 개똥을 만날 확률이 ‘2’정도라면 한강은 ‘7’쯤 되는 것 같다. 보는 눈이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인지 곳곳에 널려 있는 개똥은 개와 함께 있는 나까지도 불쾌하게 만든다. 

 

날씨가 좋아지기 시작하면 한강공원에서 휴대용 버너를 펼쳐놓고 음식을 해 먹는 사람들을 종종 볼 수 있다. 테이크아웃 푸드의 포장 박스 쓰레기에도 한숨이 난다. 대부분 피자나 치킨 박스인데, 주말에는 가뜩이나 몇 개 없는 쓰레기통이 가득 차는 것도 모자라 그 주변으로 산을 이룬다. 술병과 음료수 캔도 한몫한다. 여기저기 풀밭에 박혀 있는 담배꽁초도 마찬가지. 이 때문에 흡연자인 나 역시 올해 6월부터 한강공원 열한 곳을 금연 구역으로 지정한다는 소식이 조금 반갑다.

 

한강의 계절이 돌아왔다. 곧 주말이 되면 인기 좋은 한강공원들은 돗자리와 텐트, 바람막이로 가득해지겠다. 넓은 한강공원의 잔디밭을 가득 메우고 와글와글, 1m 거리를 두고 눕거나 앉아 있는 사람들을 보면 조금 슬퍼지기도 한다. 이렇게 자리를 펴고 누워 하늘을 보고 바람을 맞고 햇볕을 쬘 데가 한강 말고는 거의 없다는 게 피부로 느껴지기 때문이다. 서울은 이 도시의 매력을 한강에 많이 빚지고 있다. 그래서 말이지, 다시 한 번 한강이 있어서 정말 다행이다.

 

about 이주희는 <이기적인 식탁>과 <이기적인 고양이>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작가로 도시에 버려지는 수많은 유기 동물에 관심이 많다. 일주일에 세 번은 반려동물과 함께 한강 산책을 즐긴다. 

CREDIT

EDITOR : 이주희PHOTO : 이성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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